보아 노력의 결실을 맺다
최근 유행한 스트리트 댄스 걸스 파이터에서도 댄서들의 영웅은 보아였습니다. 그만큼 보아는 댄서의 중에 최고의 댄서이자 선구자였습니다. 원래부터 보아는 춤으로 정평이 나있었고 한국 가요계에서는 그녀의 춤실력을 아무도 비판할 수 없었습니다. 지금은 앨범을 내지 않는데도 한 번씩 보여주고 비치는 춤 실력은 아직 그녀가 건재하고 녹슬지 않았다는 것을 반증하는 얘기입니다.
보아 새로운 이미지를 추구하다
보아는 한국의 4집 5집 앨범을 통해 자신의 소녀 같은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해 세련된 이미지로 변신하고자 노력을 했습니다. 보아는 마이네임을 통해 돌파구를 찾으려고 했습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습니다. 마이네임은 앨범은 19만 장 팔리기도 했으며 한국에서 2004년에 11번째로 많이 팔린 앨범이기도 했습니다. 보아의 다른 앨범 노래 걸스 온 탑은 2005년에 11만 3천장이 팔리기도 했으며 앨범 순위 14위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보아는 2004년 광복절을 맞아서 한국의 광복절 일을 돕고자 오천만 원을 기부를 하기도 했습니다. 이 일은 일본에서 한창 주가를 올리던 보아가 일본에서 논란이 되기도 했습니다. 보아는 다섯 번째 일본 앨범을 발매하기도 했습니다. 메이드 인 트윈티를 발표를 했으며 일본 차트에서 1위를 기록하기도 했으며 이 앨범은 오리콘 주간 차트에서 1위를 기록하고 일본 차트 6개 부문 연속 오리콘 차트에서 1위를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또 다른 아티스트들과 협업으로 중국의 쓰촨성 지진 희생자들 위해 공연을 하면서 기금을 마련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보아는 자신의 주얼리 브랜드를 론칭하기도 했습니다.
보아 계속되는 해외 활동 그리고 미국 활동
2008년 보아는 에스엠 엔터테인먼트가 미국에 회사를 새우고 미국 진출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미국 회사와 보아는 상호 협력하여 앨범을 발매하기도 했습니다. 빌보드 핫 댄스 차트에서 순위권에 오르기도 했으며 노래를 홍보하기 위해서 콘서트를 준비하기도 했습니다. 보아는 영어로 된 앨범은 3월에 미국 전역에 발매되기도 했으며 블러드 샤이 아반트 트랙과 함께 여러 곡이 수록되어 있었습니다. 보아의 두 번째 일본에서 앨범을 영어 버전으로 바꿔서 데뷔를 하기도 했으며 일본에서는 3월 18일에 발매되기도 했습니다. 보아는 일본 진출만이 꿈이 아니라고 말을 했습니다. 항상 미국에서 노래를 하고 데뷔하는 모습을 상상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시행착오도 있었습니다. 일본어를 배우는 것보다 영어를 배우는 것이 더 어려웠고 미국 도시에서 적응하기도 친구를 만나는 것도 어렵다고 말을 했었습니다. 보아는 미국에서 자신을 더 돋보이게 하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했었습니다. 다시 미국에서 활동을 잠시 뒤로하고 아시아로 돌아와 일본에서 7번째 앨범을 아이덴티티 앨범을 발매하기도 했었습니다. 보아의 소속사 에스엠 엔터테인먼트는 세 개의 지역 활동을 계획하고 있었는데 그것을 계속 지속하기에는 어려울 것이라고 판단을 했습니다. 2010년에 보아는 드디어 한국에서 앨범을 발매하기도 했습니다. 허리케인 비너스는 오만 오만 장을 팔기도 했으며 그 해에 한국에서 많이 팔린 앨범 순위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보아는 한국 케이팝을 대표하여 여러 공연에 기여하기도 했습니다. 보아는 미국의 댄스 영화에 출연하게 되어 할리우드를 경험하기도 했습니다. 2011년에 영화 제작은 끝이 났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2013년에 작품을 개봉하게 되었습니다. 보아는 일본에서 데뷔 10주년을 기념하면서 앨범을 발매 했습니다. 앨범은 오리콘 주간 차트에서 4위권에 들었으며 일본 도쿄에서 자신의 10주년 기념 콘서트를 하기도 했습니다.
보아 한국에서 영향력을 주는 가수
공연 후에는 케이팝 후배들을 양성하기 위해 와이지 엔터테인먼트 수장 양현석과 제이와이피 엔터테인먼트 박진영 보아는 에스엠 엔터테인먼트 대표로 케이팝 오디션 프로그램 케이팝스타 심사위원으로 출연을 하게 되었습니다. 보아는 자신의 어린 시절 경험과 해외 경험을 바탕으로 참가들한테 더 공감을 할 수 있는 심사위원이었습니다. 베테랑 가수답게 후배들의 움직임을 놓치지 않고 예리하고 정확하게 심사를 하면서 대중들에게 역량을 인정받기도 했습니다. 한국에서의 활동으로 보아는 또 한 번의 도전을 하게 되었습니다. 보아의 한국에서 7집 앨범 온니 원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발매와 함께 온니 원은 각종 음원 차트에서 1위를 차지하기도 했으며 여러 음원 차트에서 당당히 1위를 하는 목표를 달성했습니다. 보아의 활동은 다른 분야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났습니다. 2013년 케이비에스 드라마에 카메오로 출연하기도 했으며 처음으로 드라마 주인공을 맡아서 자신의 연기력을 인정받기도 했습니다. 또한 한국 힙합 가수 리쌍의 길과 같이 프로듀싱을 하기도 했으며 2014년에는 에스엠 엔터테인먼트에서 강타와 함께 중요한 보직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에스엠 엔터테인먼트는 어린 친구들을 훈련을 시키기 때문에 보아와 강타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판단을 했습니다. 보아는 다양한 장르로 대중들에게 자신의 많은 모습을 보여주려고 노력을 했습니다. 평론가들은 그녀의 힙합 영향을 좋아했지만 자신은 알앤비도 관심이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보아의 음악은 대부분 알앤비 요소가 있는 노래였습니다. 보아는 춤에서는 정평이 나있었던 사람이기에 발라드를 부를 때면 대조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녀는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계속 새로운 변화를 추구하기도 했습니다. 발렌티 앨범은 발라드와 또 그녀가 좋아하는 장르 알앤비 록 음악까지 다양한 경험을 보아는 중요시했습니다. 자신의 앨범 노래 페이스는 일렉트로닉 팝송에 영향을 받기도 했으며 어쿠스틱한 기타 장르 그루비 댄스 발라드 노래를 앨범에 넣기도 했습니다. 최고임을 인정받으면서도 작사 작곡하는 프로듀싱 능력은 조금 떨어지기도 했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프로듀싱 하지 않고 다른 프로듀서들이 주는 음악만 한다고 비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여기서는 조금 이해는 안가지만 가수마다 각자가 잘 할수 있는 것을 잘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당시에 저런 비판이 왜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만큼 보아는 논란의 중심이 아닌 케이팝의 중심이었으며 선구자로 있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프로듀서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인정했으며 본인의 소속사 에스ㅇ메 엔터테인먼트가 지지 해주지 않았다면 지금 보아는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솔직하고 담배한 본인의 성격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었습니다.
보아 글을 마치면서
어린 시절에는 에스엠 엔터테인먼트와 동행하면서 감당할 수 없을 나이에 모든 것을 이겨냈으며 지금은 케이팝 후배들을 위해 물심양면으로 한국 가요계에 힘을 쓰고 있는 보아는 대한민국 최고의 가수입니다. 어린 시절 어떻게 보면 청춘을 가수를 위해 희생하기도 했습니다. 인내와 역경을 버티고 이겨낸 만큼 보아의 지금 위치를 누구도 깎아내릴 수 없을 것입니다. 오늘도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양질의 글로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 위키디피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