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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 애니 원 그녀들에 대해서 알아보자 본문
투 애니 원 그녀들은 누구인가
오늘은 와이지 엔터테인먼트 소속 가수였던 투 애니 원을 알아보려고 합니다. 활동 기간은 5년 그렇게 길게 활동은 하지 않았지만 데뷔하자마자 정상급 그룹들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프로페셔널한 걸그룹이었습니다. 투 애니 원은 4명이 멤버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박봄 씨엘 산다라박 공민지 기존 케이팝 그룹들과 차별화된 전략으로 데뷔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실험정신 무대 장악력 매너 패션까지 독특한 분위기를 내뿜었고 대중을 사로잡을 무기들을 들고 나온 것 같았습니다. 투 애니 원의 데뷔곡 파이어라는 곡의 노래였습니다. 제목과 같이 정말 강력한 인상을 대중들에게 보여주기에는 흠잡을 곳이 없을 정도로 완벽하다고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곧이어 아이 돈 케어 곡을 내면서 그녀들의 소프트한 모습까지 대중들에게는 신선함으로 다가왔을 것 같습니다. 엠넷에서 주최하는 아시안 뮤직 어워드 올해의 노래로 시상을 받았으며 데뷔하면서부터 대상을 받은 최초의 여자 아이돌 그룹이었습니다. 여기까지만 읽어도 그녀들이 얼마나 위대한 한국 가요계에 얼마나 위대한 발자취를 남겼는지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투 애니 원 데뷔과정
항간에 여자 빅뱅이 데뷔할 거라는 소문이 나기 시작했었습니다. 드디어 2009년 그녀들이 가요계에 나올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와이지 엔터테인먼트는 그룹 빅마마 이후 시간이 오래 지나면서 처음 걸그룹을 데뷔 시키게 되었습니다. 와이지 엔터테인먼트는 4년 동안 피가 날 정도로 훈련을 했고 그들의 노래는 당대 최고의 프로듀서 테디가 프로듀싱을 맡게 되었다고 발표했습니다. 원래 그룹명을 이십 일로 지으려고 했으나 겹치는 그룹 이름이 있어서 투 애니 원으로 팀명을 지었다고 합니다. 최종적으로 박봄 산다라박 공민지 씨엘이 활동하게 되었으나 그룹 결성하기 전에는 스피카로 활동하던 보형과 피에스타의 린지라는 친구 또한 투 애니 원이 되고자 훈련을 했었다고 합니다. 아쉽게도 최종적으로 같이 데뷔하지는 못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4명이 데뷔한 게 잘 된 일일까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투 애니 원 전성시대
첫 번째 두각을 나타낸 시기는 롤리팝이라는 휴대폰 광고에 빅뱅과 같이 광고하면서부터입니다. 빅뱅과 함께 작업을 진행하였고 빅뱅이 녹음하여 2009년 3월에 엘지 휴대폰 홍보를 하기 위해서 발매가 되었습니다. 상큼한 뮤직비디오가 나왔지만 롤리팝 제품의 광고 문제로 실제로 휴대폰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파이어는 테디라는 프로듀서가 작사 및 노래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장르는 힙합과 레게가 어우러진 노래였습니다. 5월에 출시되기도 했습니다. 파이어라는 곡은 두 개의 이미지 영상을 볼 수 있는 뮤직비디오를 공개했습니다. 스페이스 버전과 스트리트 버전이 공개되었습니다. 싱글 노래가 공개된 지 하루가 지나지 않았는데 비디오 조회 수가 100만 뷰 이상을 기록했다고 합니다. 그때 당시 어느 누구에게도 본 적이 없었던 기록이라고 합니다. 파이어와 투 애니 원 이후 인기 있는 온라인 검색어로 항상 순위에 올라 있었습니다. 또 투 애니 아이 돈 케어 7월에 발매가 되었습니다. 그녀들의 곡들 각종 차트에서 차지하였습니다. 음악 차트에 무조건 들어있다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짧은 시간 준비 동안 투 애니 원은 곧이어 아이 돈 케어라는 레게 버전을 공유하기도 했습니다.
투 애니 원 국내에서 해외로
투 애니 원은 2011년에 이피 앨범 일본판 발매에 맞게끔 더 많이 움직여야 했습니다. 일본에서 발매에 앞서서 9월 19일 20일에는 놀자 콘서트로 해외로 나가게 되었습니다. 앞서 말한 이피 앨범은 수치로도 어마 무시하였습니다. 소위 말하는 한국 걸그룹 앨범에 내가 최고다 헤이트 유 고 어웨이 론리 일본 사람들이 쉽게 들을 수 있게끔 설명을 필요한 부분입니다. 2012년에는 일본에서 발매된 싱글 노래에 함께 첫 번째 일본 정규 앨범을 발표했습니다. 앨범에는 파이어 아이 돈 케어 등 한국 노래의 일본어 버전과 마돈나의 여러 곡도 수록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일본의 오리콘 차트에 계속 진입하는 성과를 보여주기도 했었습니다. 이 앨범은 오리콘 차트에서 5위에 올랐었고 일본에 한국에 조금 못 미치는 삼만 이천 장 이상을 판매하게 되었습니다.
투 애니 원은 2013년 미국 가수와 공동 작업한 노래를 발표하였습니다. 이 노래는 훗날 인텔 울트라북 컴퓨터 광고를 하더라고 합니다. 씨엘은 아직 미국 계획이 없었다고 하지만 세계에서 노래하고 싶었던 투 애니 원의 리더였습니다. 투 애니 원은 컴백홈과 동시에 디지털 차트에서 2주 연속 부동의 1위를 차지했다고 합니다. 그녀들이 얼마나 최선을 다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 외에도 여러나를 돌아다니면서 계속 끊임없이 노래에 대한 진지한 자세를 풀지 않았습니다. 10월까지 16개 도시에 공연을 계속 펼쳐보기도 했으며 2014년에는 세계적으로 인정받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또한 빌보드 매거진의 한 해 최고의 힙합이라는 수식어를 안겨주었습니다. 이것보다 더 큰 영광이 있었을까요 빌보드 다른 차트에서 1위를 차지했습니다.
투 애니 원 사실상 해체
투 애니 원은 2015년 3월 유튜브 뮤직 어워들 에서 상을 수상하고 활동을 잠시 쉬는 도중에 박봄이 마약의혹으로 제기 되었습니다. 그 이후에는 투 애니 원은 자연스럽게 해체하는 수순으로 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와이지 엔터테인먼트에서 무슨 의도였는지 모르겠지만 누가 진실이지 거짓인지 판단이 안섰습니다. 공백이 길어지면서 투 애니 원 멤버 공민지는 탈퇴를 하였습니다. 산다라박과 씨앨 와이지 엔터테인먼트 소속으로 솔로 아티스트로 남아있었습니다. 박봄은 자연스럽게 전속계약 해지가 되어버렸으니 말 입니다. 투 애니 원의 방향은 알앤비 힙합 일렉트로팝 레게 장르 등을 통해서 다양한 경험을 쌓게 되었습니다. 평범한 것을 거절하고 새로운 시도를 통해 항상 특이한 것을 만들어내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투 애니 원 마치면서
너무 짧게 활동하고 들어가기에는 재능이 많았던 그룹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투 애니 원 팬클럽을 가입할 정도로 저는 투 애니 원 노래를 좋아했습니다. 무대를 보면 정말 대충 하지 않고 열과 성을 다해서 하는구나 무대를 보면서도 혼자 느낀 점이 많았습니다. 구설수나 순간의 실수만 하지 않았다면 조금 더 오래 활동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을 텐데 아쉽습니다. 이런 걸 보면 10대 20대를 받쳤지만 잘 된 그룹과 아닌 그룹은 한 끗 차이가 나는 것 같습니다. 반짝이라고 얘기하기도 애매한 투 애니 원입니다. 그만큼 강력한 인상을 대중들에게 남겨주었기 때문이죠. 오늘도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에 좋은 글로 찾아뵙겠습니다. 혹시 읽어보고 싶은 주제가 있거나 궁금한 점이 있으면 댓글 달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럼 저는 이만 정말정말 물러가보겠습니다. 투 애니 원